논평한진 총수일가 갑질 사태, 이사회 정상화 및 CEO 승계 시스템 마련의 계기 돼야

작성일시: 작성일2018-04-26   

한진 총수일가 갑질 논란, 개인적 일탈을 넘어 오너 리스크로 확대된 상황
이사회가 나서 필요한 조치 취하고 재발방지 위해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 도입 필요

1. 한진 총수일가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에서 촉발된 한진 총수일가의 갑질 행태가 회장 일가의 국외물품 밀반입 의혹, 항공사업법상 금지된 외국인 등기이사(조현민) 방치 의혹,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양호 회장의 갑질 제보 등으로 연일 확대되고 있다. 작년 조양호 회장이 호텔공사비 30억원 가량을 자택공사비로 유용한 혐의와 관련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지난 22일(일) 한진은 조현아, 조현민 자매를 한진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사퇴시키고 전문경영인 부회장직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현재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한 경찰수사, 국외물품 밀반입 의혹에 대한 관세청의 조사, 항공사업법 위반 장기간 방치에 대한 국토교통부 감사, 공정위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추가 의혹에 대한 계열사 조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편,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나서서 조양호 회장 등에 대한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총수일가 갑질로 추락한 회사의 신뢰를 회복하고 실제 회사가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주주들이 나서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도 있다.

2. 무엇이 한진 총수일가와 그룹의 위기를 가져왔을까?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한진 총수일가의 안하무인격 갑질과 회사 사유화 논란을 지켜 본 국민들의 공분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4년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문제가 됐을 때 당시 조양호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조 전 부사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당초 1심에서 법정구속 됐던 조현아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작년 말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조현아는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올해 3월 한진칼네트워트 사장으로 곧바로 경영에 복귀하여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런 전례로 볼 때, 비록 지금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 누구도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반성하고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둘째, 총수의 말 한마디에 최고경영자(CEO)의 선임과 해임을 비롯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전근대적 지배구조에 따른 문제를 들 수 있다. 한진 총수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조양호 회장은 두 자매의 동반 퇴진을 선언했지만, 사실 이것은 이사회 또는 주주들의 동의에 의한 해임이 아니었다. 단지 조양호 회장의 결단만으로 가능했는데, 이것은 언제든 총수가 원하면 경영복귀도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결정은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한진 총수일가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더 큰 비난 여론에 직면한 계기가 되었는데, 이런 황제경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총수일가의 개인적 일탈이 오너 리스크(owner risk)로 확대되었고,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회사와 주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유독 재벌 총수일가가 연루된 사건일수록 이사회를 비롯한 회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총수일가의 이익을 회사의 이익보다 우선 고려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한진 총수일가 논란은 재벌 체제에 내재한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국민들은 이런 비상식적인 의사결정 체계와 후진적 지배구조에 공분을 느끼는 것이다.

3.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시장에서 더 이상 한진 총수일가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진 계열사 이사회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조속히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한진 총수일가는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갑질 행태와 의사결정으로 그룹의 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으로, 언제까지 조양호 회장과 그 일가의 결단에 그룹의 명운을 맡길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사회가 결단 하는 게 옳다. 한진 계열사 이사회는 회사가 총수일가의 사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사회 주도의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감사위원회는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고 내부통제제도 등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불행한 사태의 원인 중 하나인 재벌 3세, 4세로의 경영권 승계 본격화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현재 조현아, 조현민 자매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 상태이고, 조양호 회장 부부와 과거 갑질 문제를 일으킨 조원태 사장의 거취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법률 위반이 확인될 경우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와 별개로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총수일가 임원이 회사의 가치와 평판을 훼손하는 것을 이대로 계속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남는다.

현재 재벌의 경영권 세습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이번 한진 사태에서 보듯이 자질이 부족한 총수일가 자녀로의 경영권 승계는 회사와 그룹을 위기 상황에 내몰 수 있다. 만약 한진 주요 계열사가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최소한의 자격과 역량을 갖춘 후계자를 임명하는 절차를 갖췄더라면,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물컵 갑질’ 논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진 계열사 이사회는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전에 후보군을 발굴하여 일정 기간 검증을 마친 후 최고경영자로 임명하는 절차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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